500만원으로 일군 '라면 제국'
불량 쌀 싸게 팔려다 실패한 경험
평생 품질경영 고집하게 만들어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 강조
농심은 지난 4일 이사회를 열고 다음달 25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지 않기로 했다. 신 회장의 임기는 다음달 16일까지다. 다음달 주총에는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과 박준 부회장, 이영진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된다. 차기 회장직에는 농심홀딩스 최대주주인 신동원 부회장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농심은 신 회장의 세 아들인 신동원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을 중심으로 승계 작업을 해왔다.
신 회장의 반세기 경영 원칙은 ‘우보만리(牛步萬里)’로 요약된다. 1965년 롯데라면을 처음 개발한 이후 지금까지 ‘식품업의 본질은 맛과 품질’이라는 원칙을 지켜왔다. 화려한 광고와 마케팅보다 본질인 품질 경쟁력을 갖춰야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지금의 농심을 만든 장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고기라면, 너구리, 육개장사발면, 짜파게티, 신라면, 안성탕면 등 라면 제품과 새우깡, 감자깡, 양파링, 꿀꽈배기 등 스낵 제품 모두 당시 출시돼 20년간 꾸준히 팔린 스테디셀러다. 신 회장은 사내에서 ‘작명왕’이라고 불릴 만큼 농심의 대부분 제품명을 직접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1965년 설립된 농심 대방공장
농심을 1등 기업으로 키운 건 기술개발과 투자였다. 1965년 첫 라면을 생산한 해에 라면연구소를 세웠다. 투자도 선제적, 공격적으로 했다. 서울 대방공장을 모태로 안양공장, 부산 사상공장, 구미공장 등을 첨단 식품 생산기지로 만들었고 해외 중점 국가인 미국, 중국에도 대규모 공장을 지으며 진출했다.
기술이 곧 품질이고 혁신이라고 믿어온 신 회장은 2010년부터 직원들에게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라며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또 “라면 업계 지난 50년이 스프 경쟁이었다면 앞으로 50년은 제면 기술이 좌우할 것”이라며 “다른 것은 몰라도 경쟁사와의 연구개발(R&D)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강조했다.
농심의 제품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트럭 80대 분량의 밀가루로 수천 번 실패 끝에 제조해낸 국내 최초의 스낵 새우깡, 국내 최초의 쌀면과 건면 특허 기술, 국내 최초의 짜장라면 등이 수많은 도전 끝에 이룬 결과다.
해외에서의 성과는 느리지만 견고하게 ‘초격차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농심의 라면 수출액은 2004년 1억달러를 넘었고, 2015년엔 5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엔 전체 매출의 약 40%인 1조1000억원을 해외에서 달성했다.
신 회장은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꺼린 은둔형 경영자다. 기업가는 화려한 포장과 이미지보다 비즈니스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신 회장은 2003년 농심을 인적분할해 지주회사 ‘농심홀딩스’를 신설했다. 현재 상장, 비상장, 해외법인 계열사 총 35개사를 산하에 두고 있다. 국내 계열사는 19개다. 상장사는 농심홀딩스, 농심, 율촌화학 등 세 곳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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